글을 잘 쓰고 싶다

2008. 2. 12. 18:11읽든지 말든지

아버지는 글을 매우 잘 쓰신다.
이과(이과 문과 할 때 이과), 그것도 어설픈 것이 아닌 이과의 최정점의 전문가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글을 정말 잘 쓰신다. 나만 그런가 싶어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상대방의 아버지에 대해 존경을 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대략 50% 까지 잡아 보아도, 그들은 내 아버지의 문장에 감탄한다.
내가 볼 때에도 가끔 아버지의 글은 학창시절 읽었던 윤동주의 시 같기도 하고, 어디엔가 문학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책에서 보았던 문구 같기도 하다. 허나, 평소 말씀이 별로 없으시기 때문에, 가끔가다 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놀랍다. 아마도 말씀까지 잘 하셨다면, 말로 벌어먹고 사는 그런 직업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 아버지의 아들.
그런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 뭐 좀 끄적거리려 들면 내용이 앞 뒤가 맞지 않으며, 점점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내용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이것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 전, 쓰고자 하기 전 궁극적으로 서술해야할 내용에 대한 기반 잡기로서 다른 글, 다른 말부터 시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과 같이 본 마음을 숨기려는 의도로 그러는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주로 부담을 느끼는 건,
1. 괜히 어려운 단어나(한자어가 많겠지)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차치(且置)'가 있는 데, '어쩌고 저쩌고는 차치하고서라도...' 라는 식의 말이나 글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괜시리 읽는 자, 듣는 자가 '하 이 새끼 건방떨기는...' 등의 생각을 할 까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깎아내려 3류인 사람으로 보여지길 위해서인지 사용을 하지 않는다.
2. 또한, 뭔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다 보면 조금 만연체가 되어서 실제로 대화를 하는 경우에는 원래 말이 느린데다가 말을 좀 길게 늘여서 하니까 단순한 욕지거리 외에는 상대방이 상당히 답답해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의도했던 거와 달리 만연체로 가다 보니까, 내용이 틀어진다. 그리고, 형용사나 부사 (한글로 뭐더라 꾸밈말??) 등을 적절한 위치에 집어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음, 예를 들자면, "거의 ~ 하지 않는다." 로 써야할 지, "~를 거의 하지 않는다." 로 써야할 지 고민하다보면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다.
4. 마지막으로, 웬만하면 이미 적어놓은 글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연필로 쓸 때에 지우개를 되도록 쓰려 하지 않으며, 이렇게 타이핑을 하는 경우에는 오타가 아닌 경우, 잘못되 내용이 아닌 경우엔 거의 백스페이스를 누르지 않는 것이다. 즉, 즉흥적으로 작성한 글에 대해서 좀 이렇게 다듬으면 좋을텐데 하는 걱정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 때문에 앞서 이야기한 만연체라든가 꾸밈말(?? 이거 찾아봐야겠다.)을 적절한 위치에 집어넣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십여년 전, 대학 입시 때에 수능을 치루고, 본고사도 치루고, 논술고사도 치루고, 면접까지 봤구나... 아 시발, 그 때 교수님한테 잘 보이려고 살살 기던 내가 생각나니 골때리는 구나... 수능,본고사,논술로 이미 결정 될 거 그냥 어떤 학생이 지원했는 지 한번 보려고 면접을 치뤘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당시 논술고사를 치룰 때에 한 번, 그냥 내 특유의 길게 쓰는 능력(?)으로 줄줄줄 써 내려가느데, 거의 다 작성했을 무렵, '아! 앞 부분에 이러이러하게 쓰는 것이 더 좋겠다!' 싶어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답안지를 다시 달라고 한 기억이 난다. 8절(대략 A3) 원고지 석 장인가 그랬는데, 감독하시던 교수님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괜찮겠냐고 물으셨지만, 뭐 그냥 밀어붙여서 답안지를 다시 받아 작성했다. 자, 그걸 다시 쓰지 않았으면 불합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그 후 몇 년 동안 머리속을 맴돌면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비겁하게... 논술이라는 거 그냥 줄줄 써야 진정성이 뭍어나오는 거 아닌가. 웃긴 건, 그런 정황적인 건 기억이 나건만, 정작 논술 주제는 뭐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

궁금한 게,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지, 글을 계속 많이 써야 하는지이다. 물론 대부분, 그리고 내 생각에도 책을 많이 읽어야 더 도움이 될 것 같지만,  그럼, 책을 많이 읽어서 글을 잘 쓴다는 건 혹시, 그렇게 책을 읽음으로서 기억된 그 책에서 사용된 문장, 느낌등을 그대로 복제해서 재사용되어지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도 된다. 지금 역시 얼마전 읽었던 스페인작가의 소설의 문장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냐 하면, 물론, 소설 작가라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고, 이런저런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도 둘러봐야 하는 등의 자료수집도 해야 하고, 기타등등 현실성 있는 내용이 되도록 연구 차원에서 책을 많이 들춰봐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만화가도 마찬가지, 스포츠 만화를 그리려면, 해당 종목에 대한 사진/동영상에 대한 자료수집 또한 필수적일 것이다. 슬램덩크로 유명 작가가 된 다케히코 이노우에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난 마이클 조던이 활약하던 시절의 NBA를 즐겨 보고, 또 그 화보집도 많이 사다 보았는데(지금도 고향집에 내려가면 그 당시 수집했던 책자가 좀 있다.), 슬램덩크의 경기장면에서는 화보집에 나온 선수들의 구도/비율과 거의 똑 같은 게 많이 나왔다. 아니, 당시의 이노우에는 지금의 (예를 들자면 배가본드) 기가막힌 인체비례를 구현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만화가 좀 더 허접했다고 본다. 그럼, 이것 또한 재사용, 나쁘게 말하면 사진 저작권을 침해 하는 것일까? 표절일까? 난 뭐 이노우에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농구만화도 많이 나왔는데, 어떤 작가는 농구의 룰도 모르고 그린 사람도 있었고, 정말 농구를 좋아하는 나같은 학생이 보아도 허접스러운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나마 NBA 화보집을 복제한 이노우에 였기 때문에 그런 초 절정 인기를 누린 게 아닐까.

봐라봐라. 얘기가 또 샜다. 아무튼, 그런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들에겐 아무튼 책을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내가 원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찌해야 하는지.

그런데 왜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걸까.
응? 뭐 얻는 게 있다고.
한심하게 마무리한다.

참, 구두 샀다. 락포트(Rockport)의 편안함에 자그마치 말가죽이다. 79,900원에 겟
이거 사진으로 짤방 마무리. 매장 직찍사라고 하시던데, 난 고객이니 좀 봐주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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