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기계

2009. 1. 9. 09:52Coders

(예전 글로부터 유추해 보았다면) 혹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직업이 코더(Coder) 입니다. 프로그래머 또는 개발자라고도 하고요, 정식 명칭은 연구원 입니다. 코더, 이런 명칭은 저와 같은 프로그램 코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하시킬 때 주로 쓰는 단어 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게 있죠. 예전에 저와 같이 일하다가 회사를 그만 둔 별 볼일 없는 코더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이 우리가 무슨 개발자야! 설계자가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그냥 코딩만 하는데... 그냥 코더지..." 어찌 보면 스스로, 또는 우리를 깎아내리는 말 같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도 계속 코딩하는 그 사람은, 자신의 직업이 정말 싫었을까요?

다시 한번 더 예전 글로부터 유추해 본다면, 제 경우에는 어찌어찌 한 회사에 꽤 오랜 시간동안 붙어 있지만, 그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코더는 아닙니다. 가끔, 무슨무슨 개발자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말이죠, 좀 능력이 좋으신 분들은 프리로 뛴다, 즉 프리랜서로 개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월급쟁이 코더 보다는 보수를 거의 2배 이상 챙길 수가 있더군요. 실제로, 제 대학 동기 중에서도 프리를 뛰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 이야기도 들어보면 거의 그 이야기가 맞습니다. 헌데, 이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일단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음 일을 찾기 전 까지는 벌이가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단점 외에도, 개인 사업자(또는 그냥 개인인가요?) 이기에, 회사에서 반(半)씩 내 주는 고용보험, 갑근세,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뭐 이런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만 제하더라도 꽤 많은 금액이 되고요. 또 스스로가 알아서 그러한 것들을 일일이 챙겨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납부하지 않고 회피하는 분들도 있지요. 사실 국민연금은 연금이 아니라 세금 같으니까요.) 골치가 아픕니다. 배우자가 월급쟁이라면 좀 편해질 수도 있지만(그런 경우 프리랜서인 본인은 백수인 것 처럼 행세를 하지만, 이도 조심하지 않으면 거의 발각되는 경우가 허다한 듯 합니다.), 어쨌거나, 수입에 대한 불안감과 복잡한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적절히 받고 다니는 월급쟁이에 만족하고 있어요.

글 제목과 상관없이 주절주절 투덜투덜거렸습니다만, 제 생각은 우린 그냥 코더다 이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코더 라기 보다는 좀 더 비하일 지는 모르지만, 그저 공장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소프트웨어 개발사인데, 업종을 보면 "제조업"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제조하여 파는 회사이지요. 영업하고, 컨설팅, 설계하는 분들은 고객들과 만나서 오더를 따 오면, 이러이러하게 만들어- 하고 우리 코더들에게 지시합니다. 그저, 컴퓨터는 도구일 뿐 우리는 지시받은 대로 작업을 합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코더 관련 글과 부합하는 이야기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컨설턴트, 설계자는 오퍼레이터이고, 우린 그냥 만들어내는 기계일 뿐이지요. 제게 와서 그럽니다. 지금 로드 걸려 있는 게 무엇무엇이냐. 하고 말이죠. 당연한 답변을 들을 거지만 제가 좀 나태해 져서 "왜요?" 라고 되묻습니다.(요즘 분위기도 어수선한데, 한동안은 꾹 참고 그냥 "네, 저 한가합니다. 어서 일감 주세요." 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면 되돌아오는 답변은 당연히, 이거저거 해야 하는데... 이런 거죠. 그럼 지시대로 움직입니다.

고객과 직접 접할 때가 있습니다. 고객과 이런 저런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 합의를 하고 하다 보면 '아 이 건은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릴 것이다.' 하는 생각이 번쩍 들게 되죠. 하지만, 절대로 제가 "아, 이건 이 정도 기간이면 될 것 같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통제를 받습니다. 이제 컨설팅 부서와 설계부서가 가격(고객과 협의)과 스케쥴(코더와 협의)을 잡아서 고객과 코더에게 통보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까지 통제를 받는데, "아 그거요, 그냥 해 드려도 될 것 같은데요, 한 30분 정도만 작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 나중에 끌려가서 된통 혼나기도 하지요. 이젠 익숙해져서, 제 경우엔 저런 실수는 하지 않습니다. 고객과 직접 접하게 되면 그냥 "네, 이제 내용 파악은 잘 끝났습니다. 회사 들어가서 이야기를 할 테니, 곧 영업사원이나 컨설턴트의 연락이 갈 겁니다." 이러고는 빠져나오죠.

너무 스스로에게 우울한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그나마 아이템이 좋다면, 소프트웨어 개발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제 퇴근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요, 요즘 워낙 원자재값에 따라 기업들이 일희일비하게 되는데, 소프트웨어야 뭐 전기만 꽂으면 생산이 가능하니까 말이죠. 과연 정말 좋은 직업이란 뭘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음은 짤방. 코더의 꿈(?)이랄까요?
출처는 빈꿈-EMPTYDREAM(http://www.emptydream.ne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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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까지 달아주시는데 좀 두서없이 글을 쓴 것 같아 조금 덧붙입니다.
"공장기계"라고 느껴진다는 것이 이 업종에 있으신 분들이 아닌 경우에 좀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 같아 부연 설명을 하자면, 정말 시간단 몇십만원, 몇백만원의 일당을 받으시는 고급 개발자가 아닌 경우에는 고민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코딩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고급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항상 고민하며 작업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지요. 일단은 제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쉬운 예로 Copy & Paste, Ctrl+C & Ctrl+V 라 불리우는 예전에 작업했던 것, 또는 다른 개발자가 작업했던 부분을 그대로 복사해다가 붙이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때로는 항상 똑같은 볼트를 조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댓글로 달아놓을까 하다가 내용이 좀 길어져 본분을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