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형님

2008. 2. 15. 11:41읽든지 말든지

얼마 전, 형님이 교수로 임용되셨다.

지방이지만, 국립대이고, 좋은 과이다.(자잘한 내용까지 다 적으면, 사생활 노출이 될 까 두려워 이 정도만.)
물론, 대부분 그렇듯, 박사학위 소유자이며, 뭐 어디어디 유학파 박사가 아닌 국내에서 학사, 석사, 박사 모두 취득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그나마 투자비용(?)이 적게 들어간 박사다.
어려서는 괜히 다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으며, 심각할 때에는 상욕을 서슴치 않고 다투던 형님인데, 좀 커서, 아마도 군 전역 후 때 즈음 부터는 그냥 만나면 컴퓨터 사양 이야기, 게임 이야기, 주변 이야기 하며 킥킥대고, 저녁에 만나면 얇은 삼겹살 2인분 주문해 놓고 소주를 네병 비워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눈총을 받는 에... 그러니까 사이좋게 지내고 있는 형님이다.

대학시절 할아버지께서 "너희도 이제 성인이니 형한테 반말 하지 말고 존대를 하도록 하여라"라는 말씀을 하셔서, 이상하게도 제깍 존대를 하게 되었다. (이런 건 내가 참 기특하다. 중학교 시절에 또한 할아버지가 이젠 어머니, 아버지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시길래 제깍 엄마, 아빠 호칭을 버리고 어머니, 아버지 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가끔 형님께, 공부를 오래 하셨는데, 재미는 있습니까... 하면, 뭐 지금까지 해왔는데, 다른 데로 빠지면 되겠는가 하는 답변을 듣고는 했다.

알 수가 없다. 형님이 자의에 의해 석/박사까지 달리게 되었는지, 타의(물론 부모님이겠지)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지는... 내 경우에는, 장남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내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시는 편이어서, 빨리 졸업(학부)을 하고 월급 받아 먹고 싶다는 의지가 정말 강해서, 그대로 졸업 후 변변찮은 회사에서 하는 거에 비해 많은 돈 받아가며 지내고 있다.(업무시간 중에 이렇게 글 쓰는 거 보면, 정말 하는 거에 비해... 가 맞나보다.) 때문에 형님이 공부를 하던 시절에는 술을 한 잔 하고 싶어도 단돈 몇 천원이 아까워 한솥 도시락에서 치킨이나 돈까스(천 몇백원 한다.) 사다가 마트에서 사온 소주를 마시곤 했는데, 다행히 월급을 받던 난(그 당시엔 하는 것 만큼 받음), 한달에 한 두번 정도는 형님을 동네 식당에 데리고 가서 고기도 먹고 그랬는데...

이젠 둘 다 결혼도 했고, 조카도 있다.
초임 교수의 연봉이 얼마인지, 대우는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됐다. 앞으로 더 잘 되어서, 형님께 대접했던 삼겹살이 꽃등심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무례한 상상도 하고 있다.
부럽기도 하지만, 형님은 형님의 길. 난 내 길을 간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시발, 승진할 때에는 학벌 졸라 따지더라.(적어도 우리 회사는) 이번에 내가 아끼는 후배 직원 몇몇은 2년제 대학 출신이어서 승진에 누락되었다 한다... 앞으로 내 앞길에도 학사 학위 가지고서는 힘이 들 것인가... 달리 생각해 보면, 회장님 되는 거 아닐 바에야 승진 빨리하면 퇴출도 빠르지 않을 까, 오래 월급받고 다니려면 승진이 빠른 건 좋지 않아... 하는 생각을 핑계로 사실은 공부는 졸라 하기 싫어! 하는 진심을 덮어둔다.

글이 좀 밋밋해 보여 노래 한 곡. 신영옥,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