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 감독의 이끼

2010. 8. 2. 14:13읽든지 말든지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와이프하고 영화를 봤습니다.
조조 할인에 신용카드 회사를 통한 할인을 더하니 둘이서 덜렁 5,000원에 봤지요.
그렇게 저렴하게 감상한 영화는 미션이파서블 안젤리나졸리판인 솔트와 저울질하다 선택한 "이끼" 입니다. 웹툰이 원작인 것도 알고 있었고, 평소에 워낙 웹툰을 좋아하며, 또 원작이 있다 하더라도 감독이 다른 결말로 달린다거나 그런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웹툰을 먼저 볼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내용이 똑같으면 무료로 볼 수 있는 웹툰은 나중에 보더라도 돈 내고 본 영화보다는 아까움이 덜하겠다 싶어 만화를 보지 않고, 그냥 떠도는 '주인공 역할은 박해일이 딱이다!' 와 주말에 해 주는 출발!비디오여행에서 본 정보 외에는 머릿속을 텅 비워놓고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한 줄 결론은 "재미 없었다." 입니다. 2시간, 아니 2시간 이상인가? 아무튼 긴 영화인데다가 워낙 저렴하게 감상한터라 돈이 아깝다는 생각까진 들지 않았지만, 전 이런 내용 전개 싫어합니다. 스릴러와 반전은 좋아하지만 "엔딩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라는 식의 영화는 정말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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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밑으로는 스포일러가 가득하기 때문에, 영화 또는 웹툰을 보기 전에 내용을 알고 싶지 않다라는 분은 창을 닫는 등 어쨌든 더 이상 읽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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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오면서, 그리고 후텁지근한 날씨 탓과, 전 날 마신 숙취 때문에 낮잠을 푹- 자고 나서도 각각의 부분부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또는 "그 짓"은 누가 한 건지, 의도는 뭐였는지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아서, 다음(Daum) 사이트에 들어가서 웹툰을 모두 보고, 네이버 지식인에서도 검색도 좀 하면서 몇 가지 궁금했던 점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이 있을 수도 있으니, 혹시 이견이 있으시더라도, 댓글로 '존나 멍청하네...' 이런 말씀 마시고, 그냥 의견 붙여주시면 고맙겠어요. 무관심이 더 무섭긴 하지만 말이죠.

1. 기도원 몰살은 누구의 짓인가.
천용덕(정재영분)의 짓 입니다. 이런 구성의 영화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게,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 이러한 사실, 복선 등등을 주면서, 개개인의 감정이야 어떻든지간에 팩트는 모든 관객들이 아웅다웅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우선, 웹툰에서는, 유목형(허준호분)이 기도원 사람들을 모두 죽이라고 천용덕에게 지시합니다. 그러한 정황이 나옵니다. 청산가리를 사용하라 하셨는데, 모두 칼로 어쩌고... 라고요. 그리고 그걸 "선물"이라고 하죠. 영화에서는 천용덕의 진술과 영지(유선분)의 진술이 엇갈리는데, 아마도 영지의 진술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선물은 잘 보셨습니까?" 라고 천용덕이 묻자 유목형은 놀라는 표정을 짓지만, 사실상 그가 지시한 것이죠. 다만, 영화에서는 흉기가 아닌 청산가리로 살해된 것으로 보여지는데(빠른 화면으로 지나가서 자세히 보진 못했습니다만), 이 부분은 유해국이 놀라는 모습으로 처리할 거라면 그냥 흉기로 살해된 모습으로 연출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쓰다보니, 강우석 감독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유목형을 좀 더 선한 사람으로 나타내기 위해, 유목형이 천용덕에게 살해 지시를 한 것이 아니라, 천용덕이 그냥 '기도원 사람들 죽이고 싶었죠?' 라는 식으로 정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선물 이랍시고 처리한 거라고 말이죠.

2. 유목형(허준호분)은 타살인가 자연사인가.
제 판단으로는 타살은 아닌 것 같고요. 자연사 또는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좀 더 답변에 근접해보고자 한다면, 스스로 죽기를 원한 자연사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웹툰과 영화에서는 좀 갈리는 게, 웹툰에서는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유해국(박해일분)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리고, 영화에서는 영지(유선분)가 유해국에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오셔야죠?" 라고 전화통화한 내용이 영화 마지막에 나오죠.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좀 나뉘어진다는 겁니다.
웹툰 기준으로 보면, 유목형. 이 사람은 마을의 창립멤버(?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습니다.)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털고 가고 싶었으나(좀 격하게 쓰면 마음에 안 드는 이장 등등을 살해하고 싶었으나), 이 사람 또한 이장 천용덕(정재영분)만큼이나 죄를 지었다면 죄를 지은 사람이고, 마을의 실권은 이미 이장이 장악했기 때문에 뭔가 여기 저기 정보를 남겨두면 자신의 성격을 타고 난 아들 유해국이 와서 자신이 처리하려 했던 사람들을 처리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죽음(자연사?)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기준으로 보면, 이건 좀 여러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는데, 음.. 영지(유선분)가 살해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까지는 아닐 수도 있고..(이건 좀 나중에 따로 쓸게요.) 아무튼, 영지가 유해국으로 하여금 마을 사람들을 처리해 주기를 바라고 불러들인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에 따라, 새로 개편되는 마을의 권력도 쥐게 되는 것이니 말이죠.

3. 마지막 장면 영지(유선분)의 웃음과 유해국(박해일분)의 표정
이 부분이 정말 싫어요. 그냥 영지는 조연으로서 마을 사람들이 다 죽고 허탈한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괜히 웃음을 지음으로서, 갑자기 지금까지 정리된 모든 일들이 다 롤백되고 모든 사람들은 영지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것이다라는 느낌이 들게 함으로서 웹툰 보다 한 차례 더 꼬아놓은, 그래서 웹툰보다 더 재미있는 게 영화판 "이끼"다. 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거면 좀 더 이야기를 진행해 주든가 말이죠.

4. 유목형(허준호분)은 어떤 사람인가.
좀 헷갈렸는데, 웹툰에서 이장 천용덕(정재영분)의 대사를 보고 대강 감 잡았습니다. 영화 초반에 영지를 강간한 마을 청년들을 죽지 않을만큼만 손 봐 달라 하고, 그들을 모아놓고 구타를 하면서 천용덕은 씁쓸한 표정을 짓습니다. 천용덕은 유해국의 선한 얼굴과 행동 뒤에 감춰진 이중성을 간파한 거죠. 어쩌면 그 시점에 '아 이 사람과 손을 잡고 뭔가 일을 벌여야 겠다!' 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천용덕은 유목형에게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능력이 자신이 이용할 만 하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고는 유목형에게 현혹된(?) 다른 사람들 처럼 자신도 마음을 빼앗긴 것 처럼 존경하는 것 처럼 태도를 취한 거고요.
유목형은 자신은 그냥 선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뿐 자신의 이면에 감춰진 잔인성, 즉 교화가 되지 않으면 그냥 제거해 버리려는 그런 걸 스스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인 겁니다. 그 무지와 순진함 때문에 천용덕도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도 자신에 의해 교화되었다 생각하던 차에, 고기도 먹고싶고, 술도 먹고싶고, 그리고 여자도 품고 싶은 천용덕 이하 마을 사람들이 점점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하고, 서로간에 마찰이 일어나던 차에, 천용덕은(이 사람, 정말 머리 좋은 인간 입니다.) 유목형의 이면에 숨겨진 잔인성을, 그것을 모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질을 살살 돋궈서 자신을 살해하려고 온 유목형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모두의 유목형에 대한 존경심(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을 없애버리죠.
그 이후엔 유목형은 이젠 뭐 남아있는 게 없는 겁니다.
그 동안 고고했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졌건만, 한 순간 칼을 잡고 살해하려던 모습을 들켜버린 후에는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냥 귀찮은 존재로서만 바라보는 것이죠.




끝으로, 글 쓰면서, 이런 거 다시는 쓰지 말아야 겠습니다. 글 쓸 때에 생각을 정리하고 쓰는 편이 아니고 그냥 나오는 데로 술술 쓰는 성격인데, 써 놓고 보니 정리도 잘 안 되고 그렇네요.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친놈들 입니다. 유해국(박해일분)은 약간 또라이처럼 나오긴 하지만, 웹툰에서 그의 스토리(이혼, 검사와의 관계) 전체를 보고나니 아주 이해못할 인간은 아닌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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