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음을 경계하라

2008. 2. 12. 09:50읽든지 말든지

아, 뭐, 어제 폭음을 했다는 건 아니고...
이번 설 때에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무래도 명절이다 보니 술 마실 기회가 좀 많아졌는데,
평소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으쌰으쌰 하는 그런 술 기회가 아니라,
아버지, 처가집 동서들 등 술 마시면서 객기를 부릴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던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저런 덕담을 듣고 건전무쌍한 대화를 하다보니 그런 것인지,
평소 내가 술 마시는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다 보니까,
술은 역시 벌컥벌컥 마구 들이키는 것은 좋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이 서른셋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취하면, 다음날 속이 쓰릴 수도 있고, 물론 내 경우엔 속이 쓰리다지만, 오랜동안 묵혀 두었던 숙변을
두세차례에 걸쳐 배출해 내기도 하는 바 간혹가다 유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 자체가 밤늦게 까지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과,
술을 마신 후에는 왠지 출출해져서 이것저것 오뎅이라던가, 라면이라던가를 먹고,
집에 귀가해서도 TV를 틀어놓고 이곳저곳 채널을 돌려본다든가, 인터넷 기사를 여기저기 둘러보며
'이런 개새가 있나!!!' 하고 한참을 흥분하고, 물론 야동도 조금... 그러다 보면 취침 시간이 늦어져
다음날 회사에서 골골거리고, 휴일이면 날씨가 좋아도 계속 뻗어있는 경우가 많아 황금같은 휴일을
그냥 날려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물론 폭음을 하더라도 얌전한 사람이
있을 수는 있으나 거의 대부분 꼬장을 부린다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상욕을 마구 한다던가 하는
몹쓸 술버릇이 튀어나오고 이런저런 실수도 하게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며,
다음날 술이 깨어갈 때 즈음 전날의 기억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수치스러운 마음까지 들 수 있다.

하지만, 밤이고, 술도 어느정도 얼큰히 취했겠다, 연애편지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좋을지도.

아무튼,
이번 설 때에 이집 저집 다니며 차례주라는 이름을 달고 비싸게 나온 정종도 마시고,
한 친척 어른이 듕국에서 사오셨다는 정체모를 술도 한잔. 거의 고향에서만 볼 수 있는
하얀 소주도 좀 마시고, 장모님이 담그셨다는 그... 아무튼 몇년 된 과실주도 마시고,
적당히 술기운이 도는 상태에서 약간 미소를 띄운채 실실거리며 돌아다니는 기분이 참 좋더라.

만취하지 않아 내가 한 행동들을 다 기억을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에도 조심조심,
적당한 술기운에 이런저런 좋은 얘기들만 해 주고...

가장 중요한 건, 지금까지와 같이 술을 마셨다 하면 폭음을 할 경우에는,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면 술이 싫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폭음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겠는데, 뭐 아직까지는 전날 폭음에 아침에 골골거려도 저녁시간이 되어 가면 다시 술 생각이
나기 시작하는 알콜 의존증 초기 증상일 정도이긴 하지만, 그 아침의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싫고,
어쨌거나 그로인해 결국엔 술을 마실 수 없는 몸 상태가 된다거나,
술을 싫어하는, 거부하는, 또는 주변에서 "저 새끼 저거 술 먹이면 안돼!"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될 까 두려운 것이다.

최근에서야 그 유명한 최인호님의 상도를 읽었는데,
(사실 난 좀 별로더라. 난 조정래님 스타일이 좋다. 뭐 문학적 가치라던가 그런 걸 말하려는 것도 아니며,
 또한 나같은 소인배가 감히 최인호님을 까대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더 재미있게 읽은 건 조정래님의
 소설이었다는 것 뿐. 아무래도 학창시절에 시조라든지 하는 우리나라 고전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 취향이 반영되는 듯 하다.)
거기에 보면 계영배(戒盈杯) 라는 잔이 나오는데, "넘침을 경계하는 잔" 뭐 다른 거에 적용하더라도,
"과하면 좋지 않아" 로 많이 활용될 수 있겠으나, 직독직해하면 "술 많이 먹지 마라"는 얘기 아닌가.
(최인호님 술 좋아하는 거 같더라.)

아무튼 길지만 짧은 인생에 끝까지 음주를 즐기기 위해선, 폭음을 경계해야 한다.
내겐 계폭음배(戒暴飮杯)가 필요할지도.


어, 오늘 글에는 사진이 없네. 한예슬 사진이라도. 짤방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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