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2009. 6. 1. 10:20읽든지 말든지

지난 주, 영등포 민주당사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밤 11시경)에 와이프하고 같이 갔습니다.
혹시 가기 싫은 걸 내 욕심에 억지로 끌고 가는가 싶어서 물어봤습니다.
"당신 혹시 가기 싫으면 나 혼자 다녀올게."
"아냐, 가야지 가려고 했던건데."

2002년 대선 때가 생각납니다. 연애 시절이었는데,
저는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쉬는날이라고 늦잠 자고 있는 와이프네 집에 갔어요.
가 보니 예상대로 쿨쿨 자더군요.
"이봐, 어서 투표해야지, 이놈이든 저놈이든 무효표든 투표를 해야 나중에 정치인들 뒷다마도 깔 수 있는거야." 라고 하며 억지로 깨웠습니다.
귀찮은 듯 일어나더군요.
투표소는 근처 동사무소였는데, 줄이 좀 길었습니다.
투표하고 나오는 여친(지금 와이프)에게 물었습니다.
"넌 누구 찍었냐?"
"어허, 비밀투표 모르나, 그런 건 말하는 거 아냐..."
다음날 만난 여친은 노무현이 당선됐다고 좋아하더군요.
그 다음부턴 누굴 찍었느냐도 서로 물어보지 않고 지냈습니다.

어쨌건, 늦은 시각, 영등포 청과시장에 위치한 민주당사에 갔습니다.
전경버스가 2대인가 서 있더군요.
같이 가며 투덜거렸습니다.
"민주당 새끼들, 우리 노통 팽할 땐 언제고... 씨발..."
제 인상이 좀 더러워서 경찰이 혹시 잡아 세울까 조금 두려워하며,
분향소로 갔습니다.
커다란 노무현 대통령 영정사진이 보였습니다.
나중에 확인한 바로는, 공식 영정사진은 제가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요청해서 받은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더군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또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휴...
들어가니 가슴에 까만 리본을 달아줍니다.
방명록을 씁니다. 뭐라 쓸까 3초 정도 고민하다가 "사랑합니다." 라고 썼어요. 와이프는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이번 총선에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한 김영주 前 의원이 보입니다.
다른 당직자들도 있었겠지만, 김영주 전 의원 말고는 모두 듣보잡.
국화꽃을 하나 줍니다.(저는 국화꽃을 판매하는 줄 알고 미리 돈도 준비했는데, 그냥 주더군요. 계속 재사용을 하는지, 새로 사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상외로 기다림 없이 분향을 하고 나왔습니다.
저하고, 와이프하고, 모르는 어떤 여자분하고.
절을 하는데, 눈물이 또 났습니다.
나오면서, 김영주 전 의원께 다음 총선에 꼭 출마하세요, 다음번엔 반드시!! 하는 응원을 말을 해 드리고 싶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그냥 나왔습니다.
차에 붙이라는 건지 노란색, 노무현 대통령님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를 주더군요.
음... 새 차 사면 붙이고 다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와이프하고 대화 내용 대충.
"민주당 새끼들, 이 아저씨들이 잘 할 수 있을까?"
"오길 잘했다. 안 와봤으면 평생 후회할 뻔 했다."
"이젠 누굴 지지해야 하냐?"
"유시민? 유시민은 적이 많아서..."
"차라리 문재인 변호사가 정계 입문을 하시면..."

그렇게 쓸쓸하게 돌아왔습니다.
(써 놓고 보니 마누라한테 혼나겠네요, 쓸쓸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우울한 기분과 꼭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후련한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분으로 돌아왔어요.)

덧붙여,
* 분향소 사진을 좀 찍을까 하다가, 들고 있는게 어설픈 휴대폰 카메라 이고, 사진 찍는데 정신 팔리기 싫어서 그저 조문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 글에 언급된 김영주 전 의원, 훌륭하고 올바른 분이신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전여옥의원이 연고도 없이 영등포로 찔러 들어와 이번에 아깝게도 선거에 졌습니다.
* 앞으로는 좀 민감한 사안이 있어도, 원체 모자란 지식인지라, 그리고, 동경해야 할 대상도 없어진 지금이라, 정치적인, 또는 복수심에 불타는 글은 되도록 안 올리려 합니다.
* 노통 우리의 노통.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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