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31. 16:35읽든지 말든지

Pirates of the Caribbean OST중 - Klaus Badelt - He's A Pirate

예전부터 글을 쓰다 보면, 이 글을 읽는 대상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이 없던 어린 시절, 뭐 일기를 쓴다거나, 글짓기를 한다거나, 동시를 쓴다거나, 독후감을 쓴다거나... 할 때에는, 별 생각 없이, 그렇지만 이건 선생님 또는 부모님이 읽게 될 것이야 하는 생각은 기본으로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간혹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닌 예상치 못한 독자가 있을 때에는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어쩌다보니 일기를 길게 쓴 적이 있는데(이 "어쩌다보니"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시절 내 대부분의 일기는 몇 자 안 되었다. "오늘 야구를 봤다. 해태가 이겼다." 라는 식이다.-지금 생각해 보니, 몇대 몇으로 이겼는지도 적지 않은 내가 참 한심하다.), 그 다음날 일기 검사를 끝마치고 담임 선생님은 "어제는 OO이가 일기를 참 잘 썼어요. OO이 일어나서 한번 읽어볼래?" 라고 했던 것이다.
뭐 선생님의 의도는 내 기를 세워주려는 거였겠지만, 아 시발, 일기는 개인적인 거라며, 솔직하게 쓰는 거라며...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난 얼굴이 빨개지면서 일어나 그 일기를 읽었지.
읽는데 어찌나 쑥스럽던지... 게다가 일기를 다 읽고난 뒤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다가와서 "그 내용 틀렸어, 그 컬러 사인펜은 내 것이 아니라 친구 XX 거였어." 라는 말을 하더라... (일기 내용에 RR이가 가져온 컬러 사인펜...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었거든.)
아무튼, 그 때 이후로, 아 시발 일기를 솔직하게 쓰면 안 되겠구나. 어제 팬티에 똥묻은 내용을 썼으면 어쩔뻔 했어... 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카테고리를 "읽든지 말든지"로 분류해 놓고는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또 또라이 같고, 또한 읽든지 말든지의 의미 자체가 어쩌면 "읽어라"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요즘도 글을 쓸 때면 좀 고민이 되더라 이런 말이다.

사실,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 등등에서는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있지 실제 생활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뭐 난 나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할 때, 또는 반드시 누가 듣고 있을 것이다... 하는 걸 느낄 때, 아니면 한 단어로 된 욕. 그 정도가 아니라면, 혼잣말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 대상도 없으면서 대충 글을 끄적거려놓고는 누군가 보겠지? 하는 생각에 슬쩍 웃고, 또 이런 따위의 글을 쓰게 되는 난 뭐냐 말이다.

마치 밤 늦은 시간에 감정이 격해져 있을 때 쓴 연애편지와 뭐가 다른가 말이다.

하여, 누군가, 뭔가에 주목받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나중에 아 길다.. 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내가 써 놓은 글을 보았을 때, 아 그땐 내가 저런 생각을 갖고 지냈구나...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목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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